유부방

[커뮤니티 : 유부방] 스카시(SCSI) 터미네이터
2017-06-23 01:06:46

또 몇 년이 흘렀군!"

지하철 개찰구 옆의 간이 의자에 앉아 속으로 뇌까리고 있었다.

'약속시간은 잘 지키는 사람이겠지?'라는 생각도 여러 번 한 것 같았고
왼쪽 팔목의 철 지난 액세서리 같은 손목시계에 눈길도 여러 번 던진 것 같았다.

"오냐 저 젊은 사람인가 보구만"
위의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바쁘게

'자기의 휴대폰을 내게 팔겠다'던
*** 대화명을 쓰는 젊은이를 지하철역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일단 휴대폰을 살펴보시죠"
그가 내민 쇼핑백을 잡기 위하여 본능적으로 내민 내 오른손이 그의 쇼핑백을 움켜쥐기도 전에 그가 내게 한 말이었다.

지천명을 넘긴지도 벌써 여려 해!
화자의 목소리 톤 만으로도 상대의 의중과 마음결이 어느 정도는 보인다고 믿기에
가볍지 않고 무게감 있는 그의 목소리가 긴장된 내 심장의 근육을 이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자기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는 군중 속에서
‘돈으로 바꾸어야겠다’라는 젊은이와 ‘괜찮은 휴대폰을 염가로 구해야겠다’라는 중년은
지하철 통로의 간이 의자에 걸 터 앉아

제일 비싼 물건을 산길에 잃어버린 넋 나간 보부상마냥 휴대폰 케이스를 위시하여
젊은이가 건넨 쇼핑백의 모든 것들을 비좁은 의자에 펼쳐 놓고 연신 구성품들의 존재 유무와
그 정상적인 양태들을 훝고 있었다.

얼마간의 긴장된 시간도 잠시 있었고
쌍방간에 불협화음 없이 거래가 성사 되었다.

절취선 --------

“에잉, 아니 요만한 것이 7,500원이나 헐~”
“비싸기도 오질나게 비싸네~”

서비스센터의 유리문을 밀고 인도로 나서며 내가 내 뱉은 말이다.

지금, 수 년 간 좀 벌레 그림자 크기 모양 밖에 벌지 못하면서
무슨 장비들 마다 꼭 정품만 찾아대는 이 모양새에 자조감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깍아 보지도 못하고 지불해 버린 저 돈이 아까웠던 모양이었다.

‘저 놈이 저리 보여도 일견 대범한 구석이 많긴 허지’
나를 두고 인동의 어른들이 꽤나 하신 말씀이시다.

사실 그랬다.
‘대범 했다’고,

근데 이 인생이 Apple macintosh를 만나면서 졸지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

맥을 처음 접하면서 매뉴얼을 보니
구석구석 ‘꼭 이래야 합니다’라는 단 사항이 참 많았다고 지금도 생각이 들며
그래서인지 내 사무실에는 쓰고 있던 모든 맥마다 ‘스카시 터미네이터’라는 것이
꽁지에 하나씩들 달려 있곤 하였다.

외장하드에 출력할 자료들을 담아서 출력실에 건네며
밖으로 표출하진 않았지만 가슴 졸이던 일이 많았었다.

출력실 직원들이 손님이 맡긴 스카시하드들을 터미네이터도 없이 붙였다가
또 출력을 위하여 데스크탑으로 복사가 끝나면 그냥 뽑아 버리는 그런 행동들을
다반사로 하였기에(그 때는 그런 시절이었죠)

매뉴얼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던 이 몸은 늘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휴대폰의 충전은 꼭 정품 케이블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그 젊은 이로부터 셈을 하고 받은 이 휴대폰의 매뉴얼에 기록이...

그것도 유별나게 빨강색 글씨로...

55년 전 그 대범했던 꼬맹이는 어딜 가고
괜히 눈동자만 둥그렇게 커서 겁만 많은 수컷만 남았을꼬~오~오

나는 오늘 서비스센터를 방문하여 정품케이블을 구입했다.

다 애플 때문이다!